욱이야기/욱이

[wookiist] 2021년 회고

wookiist 2021. 12. 18.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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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생일을 맞이하면서, '2021년도 마무리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 해동안 묵혀왔던 '회고'를 작성할 시간이 되었다고 느꼈다. 아직 종식되지 않은 코로나가 오미크론을 이끌고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2020년엔 석사 졸업과 동시에 직장인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얻게 되면서, 인생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많은 곳에서 아직 다듬어지지 못했던 내 경력과 자아를 다듬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2020년이 끝나고 2021년을 맞이할 땐, 올해 이렇게 큰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 줄 몰랐다. 2020년에 만들어둔 상황이 조금 더 지속되지 않을까 했기 때문이다.

이번 회고를 통해서 올 한 해 내가 무엇을 해왔는지, 기술적으론, 정신적으론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정리해보고자 한다.

2021년 1월엔 이직에 대한 의욕으로 불타고 있었다. 작년 가을-겨울 동안 외근을 다니게 되면서,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계속해서 되물었고, 더는 그렇게 일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에서 내 스스로 의미와 재미를 찾지 못하고 있었고, 막연하게 떠나야한다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그래서 GitHub 1일 1커밋을 통해 잔디 심기를 시작했고, 백준이나 프로그래머스 문제를 매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문연구요원이라면 한번씩은 다녀와야 하는 군사훈련(aka. 훈련소) 날짜를 4월로 확정지었다. 최대한 빨리 다녀오고 싶었다.

2021년 2월과 3월에는 여전히 회사의 일과 이직 준비로 바빴다. istio 스터디와 백준 문제를 풀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2021년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처럼 훈련소에 입소했다. 반들반들해진 머리를 만져보며, 처음 만난 생활관 동기들과 약 22일 간의 동고동락을 시작했다. 다들 전문연구요원 또는 산업기능요원이라, 뭔가 사회에서 멋진 일을 하다 오던 사람들이었고, 가장 신기했던 건, 백준에서 1위에 랭크된 구사과를 내 옆자리 훈련병으로 만났던 기억이었다.

훈련소 생활은 다른 시기에 비해 그렇게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운이 좋게도(?) 코로나 시국이어서, 처음 약 10일 간은 제대로된 훈련을 받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생활관 내에서 보냈고, 처음 며칠은 씻기는 커녕, 양치도 못했다.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그 안에서 동기들과 재미난 요소들을 하나씩 찾아갔다. 그러다 훈련 중반기에 외이도염에 걸려서 귀가 마치 당나귀 귀처럼 붓고 압통과 가려움을 겪었다. 여차저차해서 길었던 22일이 끝났고, 우리는 무사히 사회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멈춰 있던 머리를 다시 굴렸다. 삐걱 삐걱대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5월과 6월은 여러 가지 회사 일로 바빴다. 딱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매주 주말마다 카페에 가서 이력 정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2021년 7월, 본격적으로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원티드와 프로그래머스, 사람인 등을 보면서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전문연구요원이 가능하고, DevOps Engineer 포지션으로 물색했다. 몇몇 회사들이 나왔고, 일부 회사엔 전문연구요원 전직이 가능한지 묻는 메일도 보냈다. 비록 메일에 답장을 해준 회사는 없었지만, 다행히 코딩테스트와 1차 면접 제의가 왔다. 그렇게 약 4개월 간의 이직 여행이 시작됐다. 이때부터는 면접 준비로 정신이 없어서, 내가 했던 일들이나 업무 이력을 정리하는 데에 집중했다. 기존에 꾸준히 작성해오던 TIL (Today I Learned)는 계속했지만, 코딩 테스트 준비는 조금 소홀하게 했다.

2021년 8월 역시 7월부터 이어져 왔던 면접과 과제 전형으로 정신 없이 보냈다. 와중에 이전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었던 과제를 마무리해야해서, 외근도 잦았다. 면접 일정이 잡힐 때마다 휴가를 써댔고, 덕분에 수중에 남은 연차가 4개정도밖에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8월 9일, 우연찮게 토스에서 3년차 이하 주니어 개발자를 모집하는 '2021 토스 NEXT' 공고를 보게 되었다. 기존에 다른 회사에 지원하고 있던 DevOps Engineer 포지션은 없어서, 지원 가능한 포지션 중에서 가장 가까웠던 Data Engineer에 지원했다. '꼭 붙어야 해..'라는 생각보단, '어떤 문제를 마주치게 될까?' 하는 생각으로 지원했던 거 같다.

며칠 뒤 8월 14일에, 코딩 테스트를 치렀고, 며칠 뒤 17일, 합격 메일을 받았다. 그 이후로, 직무 인터뷰와 문화적합성 인터뷰를 진행했고, 한 달 뒤인 9월 15일, 최종 오퍼레터를 받았다. 사실 될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기 때문에,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애초에 직무 인터뷰도 포기하려고 했는데, 인터뷰에 참여해봐야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이 없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크루팅 일정을 잡아주시던 분께서, 가벼운 마음으로 가능성을 테스트해본다는 생각을 가지고 편하게 임해보라면서 일정을 미뤄주셨다. 정말 감사한 분.. (아직 감사하다는 말씀을 못 드렸는데, 언젠가 꼭 드릴 생각이다.)

오퍼레터를 받고 나서도 고민이 많았다. 다른 회사에서도 비슷한 조건으로 DevOps Engineer 포지션 오퍼레터를 받았기 때문인데, 이 때 정말로 행복하다면 행복한, 그러나 미래와 현재를 계속 생각해봐야 하는 나름 심각한 고민을 거듭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문화적으로 좀 더 잘 맞을거라고 기대하고 결론적으론 토스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 때 고민했던 다른 회사의 인사 담당자 분도 너무 친절하셨어서, 나중에 어딘가에서 뵙게 된다면 꼭 인사 드리고 싶다.

이렇게 해서 길었던 4개월 간의 이직 여행이 마무리 되.. 었으면 좋았겠지만, 전문연구요원 들은 한 곳을 더 거쳐야 한다. 바로 '병무청'. 전문연구요원이 전직(이직)을 하려면, 한 회사에서 1년 6개월 이상을 일한 후에 움직일 수 있다. 내 경우, 10월 17일이었고, 이 시점까지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히고, 인수인계 및 문서 작성을 진행했다. 그리고 10월 18일이 돼서 병무청에 전직 신청서를 제출했다. 물론 이 전에 토스 쪽 인사 담당자님과 전 회사 인사 담당자님을 통해서 전직에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전직 승인이 이루어졌고, 10월 22일 퇴사를 했다. 그리고 그 다음주 월요일인 25일, 토스에 입사했다.

기술적인 측면에선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이라 더 큰 변화를 겪었다. 다행히 기존에 활용하던 Kubernetes는 나의 든든한 기초 체력이 되어주었다. 한편으론, 이젠 Kubernetes 하나만 가지고는 나를 브랜딩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이번 이직이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또, 새롭게 데이터 기술 스택을 쌓아보려고 이거 저거 강의를 들어봤는데, 막상 나에게 맞는 강의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강좌 가격은 어마어마 했는데..) Hadoop, Spark, Airflow ... 정말 생소하던 이름의 기술들을 이제는 친숙하게 듣고 있다. 이름은 어느정도 친숙해졌는데, 각 컴포넌트가 어떤 역할, 어떤 구조를 갖는지는 좀 더 봐야할 거 같다. 특히, 우리 팀에서 하는 일들이 무엇이 있는지 다방면으로 꾸준히 살피지 않으면, 하나에 고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팀원들이 주는 피드백을 기쁘게 받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면서, 하나하나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을 앞으로 계속 가질 것 같다. 나의 영향력을 넓힐 수 있도록, 하나에 매몰되지 않은 그런 배움과 경험을 쌓아가야겠다.

정신적인 측면에선 한층 더 성숙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의 제목처럼 나보다 대단한 사람들을 보면서 따라잡기 위해 달렸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다른 일을 하는 동안 그 분야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았고, 그 경험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단지,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달리는 것이 중요하단걸 몸소 체험한 거 같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 스스로를 가득 가득 채워가는 2022년을 보내야겠다.

 

새롭게 시작되는 2022년은 2021년과는 다른 의미로 자기 발전을 위해 더 힘쓰는 한 해, 건강을 챙기는 한 해, 그리고 나의 가치관을 올바르게 정립해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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