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이야기/욱이

[후기] '에어비앤비 엔지니어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이유' 영상을 보고 나서

wookiist 2021. 9. 25. 13:35

Prologue

8월 1일 이후, 블로그에 포스트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인 성장을 위해 바쁘게 살다보니 생각을 정리할 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작성한 이 글은 유튜브 EO 채널에서 에어비앤비 유호현 엔지니어님을 인터뷰한 '에어비앤비 엔지니어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이유'란 영상을 보고 정리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원인 모를 답답함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한국의 회사들이 실리콘밸리 문화를 따라한다고 해도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글을 보시고 나서 영상을 꼭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Role-driven vs. Rank-driven

영상의 주된 내용은 Role-driven 조직과 Rank-driven 조직의 각 장단점과 특징을 잘 이해하고, 어떤 이유로 실리콘밸리의 많은 기업이 Role-driven 기반으로 조직이 구성되었는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Role-driven과 Rank-driven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Role-driven

영상에선 이를 역할 조직이라고 부릅니다. 회사의 결정권이 각 역할을 맡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각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그 분야의 전문가여야 합니다. 엔지니어는 엔지니어링에 관해 결정하고, 디자이너는 디자이닝에 관해 결정합니다. 단적으로 이런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어떤 예쁜 디자인을 만들어 왔는데, 이에 대해 CEO가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더라도, Role-driven 조직에선 그저 한 개인의 의견일 뿐입니다. CEO가 싫다고 해서 디자인 전문가인 디자이너의 결정을 취소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정권이 개개인에게 있는 만큼, Role-driven 조직에는 누군가가 책임을 대신 져준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하고, 이를 계속하다 보면 자신이 프로페셔널이 되고, 이 길이 자신의 커리어가 됩니다.

다만, 결정이 한 명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어떻게 보면 Role-driven 조직의 방식은 경쟁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기도 합니다. 대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전문가들의 시각과 결정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Rank-driven

반면 Rank-driven, 영상에서 위계 조직이라고 부르는 이 조직은 한국의 많은 기업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형태의 조직입니다. 서열이 제일 높은 사람이 결정권을 모두 갖는 구조입니다. 맨 위에서 결정이 이루어지면, 내려오는 과정에서 실무가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아래에 있는 구성원일수록 어떤 방향성이나 결정권에 대해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Rank-driven 조직에선 위에서 시키는 일을 빠른 시간 내에 가장 효율적으로 끝내야 합니다. 그리고 일을 마치면 상부로 넘길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죠. 그리고 그 보고서를 상부에서 보고 판단하여 다음 스텝을 결정합니다. 결정된 다음 단계에 관해 어떤 일을 할지 정해지면 이를 하달하여 구성원에게 일을 부여합니다.

정리하자면, 결정 사항은 내려가고, 정보는 보고서를 통해 올라가는 형태입니다.

따라서, Rank-driven 조직은 이미 다 정해진 길을 걸어갈 땐 그 어떤 조직보다 빠르게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일사불란하게 가기에는 최고의 방식이기 때문에 제조업 등의 분야에선 굉장히 잘 어울립니다.

다만 혁신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혁신이란 건 결국 알 수 없는 새로운 길을 걸어가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때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Rank-driven 조직에선 이런 전문가들의 결정보다는 CEO가 결정한 방향으로 가게 되니, 이런 형태로 새로운 길을 가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Role-driven 조직에서 일한다는 것

Rank-driven 조직에선 일을 받는다는 것은 "기획서가 여기 있으니 이거대로 만들어오세요"를 의미합니다. 달리 생각할 필요 없이 주어진 대로 수행하면 됩니다.

하지만, Role-driven 조직에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합니다. Role-driven 조직에서 일은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매니저가 신입 사원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우리는 페이먼트 시스템이 필요한데, 어떻게 구현하면 될까요?

그럼 Role-driven 조직에서 일을 잘하는 신입 사원이라면 이렇게 말합니다.

  • 이 작업은 왜 하는 건가요?
  • 지금 상황에서 어떤 개발 언어가 최선일까요?
  •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기능을 쓰게 되나요?
  • 어떤 회사와 우리가 독점 계약 같은 것을 맺고 있나요?

심지어는 현재 회사의 재무 상태를 물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온갖 질문을 하는 이유는 Role-driven 조직에선 각각이 결정권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대신 결정해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런 질문들을 통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합해서 엔지니어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때문에 Role-driven 조직의 엔지니어는 생각을 굉장히 많은 사람이어야 하고, 전문성이 뛰어난 사람이어야 합니다.

Rank-driven 조직에서 Role-driven 조직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Rank-driven 조직에 있던 사람이 Role-driven 조직에 적응하는 것은 반대의 경우보단 상대적으로 쉬운 편입니다. Rank-driven 조직에서 자신이 할 수 있던 능력을 제한받아 온 것이라면, Role-driven 조직에선 이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어떤 엔지니어는 코드 리뷰를 잘하고, 어떤 엔지니어는 코드를 빨리 작성하기를 잘하고, 어떤 엔지니어는 아키텍트를, 어떤 엔지니어는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나 프로덕트 매니지먼트에 소질이 있을 수 있습니다. Role-driven 조직에선 이들이 각자가 잘하는 분야를 맡아 수행하면 되지만, Rank-driven에서는 못하는 것이라도 시키면 해내야 하니 더 어려웠을 수 있는 것이죠.

물론, 처음에는 누군가가 일을 시켜주지 않아서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못하는 걸 굳이 할 필요 없고, 잘하는 것을 찾아서 기여하면 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만약 자신이 코드 리뷰를 잘 못한다? 그럼 코드 리뷰를 잘하는 사람과 팀을 하면 되는 겁니다.

이렇게 자신의 장점을 살린다는 것은 다양성을 중시하는 실리콘밸리 문화에서 굉장히 큰 장점으로 보입니다.

전문성과 다양성

실리콘밸리가 혁신을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전문성다양성입니다.

전문성

Role-driven 조직에서는 기본적으로 맨 윗사람이 권력과 결정권과 소유권을 독점해선 안 됩니다. 오히려 결정권과 소유권을 모든 구성원에게 나눠줘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결국 회사는, 직원들을 굉장히 훌륭하고 뛰어나며, 자기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뽑히는 사람도 이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나는 누군가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회사의 오너로서 이 회사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회사 구성원 모두가 각각의 결정을 내려야 하니, 당연하게도 각 구성원은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다양성

Rank-driven 조직은 누군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어선 안 되는 조직입니다. CEO의 결정, 부장님의 결정처럼 상위 계급이 결정한 내용을 그대로 수행하는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따라서 획일화를 시킵니다.

하지만 다양성은 혁신에서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면 혁신은 일어날 수 없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길이 보이고, 그렇게 혁신을 향해 나아가는 거니까요.

이에 대해 유호현 엔지니어님은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되, 로마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자신이 속한 곳이 에어비앤비라면, 에어비앤비가 추구하는 가치와 회사의 구조에는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내 가치관 등을 버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그 대신 겉으로 하는 행동과 목표를 지향하는 건 맞춰야 합니다.

여기에서 각자의 문화와 가치관에 따라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을 어떻게 하나로 묶어 내서 어떻게 기업의 방향으로 이끌어 가느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과정에는 비용도 들고 언어적인 장벽도 있습니다. 나와는 사고방식이 전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그걸 이해를 해서 '아 이런 면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해서 총체적인 결정을 하는 것은 정말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모되는 과정입니다. 때문에 제조업 분야 같은 곳에는 Role-driven 조직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혁신을 하는 데에 있어선 많은 생각과 회의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다양성을 다 이해하고 대처하며 이를 다 아우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 자체가 혁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Mission

이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건 서로 미션을 공유하는 일입니다. 물론 Rank-driven 조직에도 미션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만, 보통 '세계 일류가 되자', '세상을 바꾸자'처럼 굉장히 두루뭉실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차피 Rank-driven 조직에선 CEO가 모든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회사의 미션은 CEO의 가치관일 때가 많고, 딱히 미션이라는 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의 많은 회사들은 구체적인 미션을 갖고 있습니다. 구글은 '전 세계의 정보를 체계화하여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 페이스북은 '모든 사람이 연결되게 하자', 에어비앤비는 '누구든 어디에서든 소속감을 느끼는 세상을 만들자'라는 미션을 갖고 있습니다.

에어비앤비의 회사 구조가 참 예쁘고, 모든 방이 마치 빌려 쓸 수 있는 구조로 된 이유는 무슨 창의력을 극대화하고자하는 목적이 아니라, 회사에 있는 동안 언제 어디서나 이 회사의 미션을 모든 구성원이 느끼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Role-driven 조직에서 만약 전문가들이 서로 다 다른 미션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되면, 마치 배가 산으로 가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전문가들이 직접 결정을 내리는 곳이기 때문에 각 결정권자가 이 미션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회사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죠.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이 CEO가 직접 나와 전체 회의를 많이 하는 이유가, 구성원들과 지속해서 소통을 해서 '우리 회사는 무엇을 하는 회사다', '우리 회사는 지금 이렇게 나아가고 있다' 등의 정보를 한 사람, 한 사람이 결정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이 주기 위함입니다.

'우린 이렇게 갈 거니까, 당신은 이렇게 해'가 아닌 '우리는 이렇게 갈 건데, 당신은 당신의 전문성을 통해서 우리에게 어떻게 기여를 해주시겠습니까?'

신뢰

하지만 이런 환경이라면 엔지니어가 회삿돈만 빼 먹고 놀 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이에 대해 유호현 엔지니어님은 그럴 이유가 크게 없다라고 말합니다. 이 길이 자신의 커리어이기 때문입니다. 이걸 잘 해내면 회사가 잘 되기도 하겠지만, 결국 내가 잘되는 것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선 팀 단위의 평가가 아닌 개인 평가로 모든 게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믿을 만한 사람, 착한 사람이라서 믿는 게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이 사람이 굳이 일을 태만하게 할 이유가 없다.

일을 태만하게 하지 않는 이유가, 태만하게 일 하면 혼나서가 아니라, 내 인생과 내 커리어에 지금 이걸 열심히 하는 게 도움이 돼서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평가를 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평가는 매니저가 일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 평가로 이루어집니다. 매니저는 동료의 평가들을 모아서 알려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리고 평가 항목도 '나에게 친절했다', '술을 늦게까지 같이 마셔줬다.' 이런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일을 해서 이 회사에 얼마의 임팩트를 줬고,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도왔는지를 봅니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전문가로서 데려와서 전문가로서 활용하는 게 실리콘밸리지, 직원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고 뭐 그건 아니다. 직원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는 이유는 전문가들을 모셔 왔기 때문에 자유를 주는 거지, 시급으로 일하는 사람들 뽑아 놓고서는 무제한 자유를 줄 순 없다.

마무리

유호현 엔지니어님은 한국의 회사들이 이런 구조를 단순하게 겉으로만 따라 해선 혁신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많은 회사들이 실리콘밸리는 혁신의 상징, 혁신하려면 실리콘밸리를 따라 한다. 따라 할 대상은 실리콘밸리의 모습'의 논리로 접근합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가 이러한 구조를 갖게 된 것엔 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나온 여러 고민과 도전이 있었기에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저 칸막이를 없애고, 자율 출퇴근제를 시행하고, 자율복장을 수행하는 등의 겉만 따라 해선 결코 혁신을 이뤄낼 순 없습니다.

저도 이번 인터뷰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점이 한국의 회사와 실리콘밸리가 다른지, 왜 다른지 어떤 이유로 이런 문화가 만들어졌는지 느끼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드는 생각은 관리자만 이런 내용을 이해해선 안 된다고 보며, 실무자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는 겁니다. 기업 문화를 만들어가는 건 일부가 아니라 모두니까요.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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